무위당장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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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8년
    10월 16일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에서 부친 장복흥(張福興)과 모친 김복희(金福姬)사이에 6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 호(號)는 호암(湖岩)이었으나, 60년대에는 청강(靑江)으로, 70년대에는 무위당(无爲堂)으로, 80년대에는 일속자(一粟子)로 바꾸어 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여운(旅雲) 장경호(張慶浩) 밑에서 한학을 익히는 한편 생명공경의 자세를 배움. 묵객으로 할아버지와 절친하던 우국지사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에게서 서화를 익힘.
  • 1940년
    원주초등학교 졸업. 천주교 원동교회에서 세례명 요한으로 영세를 받음. 서울로 유학.
  • 1944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에 입학.
  • 1945년
    미군 대령의 총장 취임을 핵심으로 하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이른바 국대안)에 대한 반대 투쟁의 주요 참여자로 지목되어 제적.
  • 194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1회)에 입학.
  • 1950년
    6.25 동란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원주로 돌아옴. 이후부터 줄곧 원주에서 생활.
  • 1954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평양에 설립한 대성학원의 맥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대성학원을 설립. 이후 5년간 이 학교의 이사장으로 봉직.
  • 1955년
    봉산동에 손수 토담집을 지어서 살기 시작함.
  • 1956년
    무소속 국회의원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
  • 1957년
    이인숙(李仁淑)과 결혼. 슬하에 3남을 둠.
  • 1960년
    사회대중당 후보로 다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극심한 정치적 탄압으로 낙선
  •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 평소 주창하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이 빌미가 되어 서대문 형무소와 춘천 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름.
  • 1963년
    출소 후 다시 대성학원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나, 한일 굴욕외교 반대운동에 연루되어 이사장직을 박탈당함. 정치활동 정화법과 사회안전법 등에 묶여 모든 활동에 철저한 감시를 받기 시작함.
  • 1964년
    이 해부터 몇 해 동안 포도농사에 전념.
  • 1968년
    피폐해진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강원도 일대에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함.
  • 1971년
    10월에 지학순 주교 등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사회정의를 촉구하는 가두 시위를 주도. 이 시위는 7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촉발하는데 큰 역할을 함. 이후부터는 민주화 운동을 막후에서 전개.
  • 1973년
    전 해 여름에 닥친 큰 홍수로 수해를 입은 지역을 복구하기 위해 지학순 주교와 함께 재해대책사업위원회를 발족.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된 구속자들의 석방을 위해 당시 로마에서 주교회의를 마치고 일본을 경유해 귀국을 준비하던 지학순 주교와 함께 국제사회에 관심과 연대를 호소.
  • 1977년
    종래의 방향만으로는 안되겠다고 깨닫고" 지금까지 해오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공생의 논리에 입각한 생명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
  • 1983년
    민주세력을 결집시켜 통일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민주통일 국민연합>을 발족하는데 일조함. 10월 29일 도농직거래조직인 <한살림>을 창립하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생명운동을 전개.
  • 1988년
    한살림 운동의 기금조성을 위해 <그림마당 민>에서 서화전 개최. 다섯 번에 걸쳐 전시회를 가짐.
  • 1989년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원주시 호저면 송곡(松谷)에 비문을 쓰고 기념비를 세움.
  • 1991년
    지방자치제 선거를 앞두고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를 발족하는데 고문으로 참여. 6월 14일 위암으로 원주기독병원에서 수술.
  • 1992년
    생명사상을 주제로 한 강연 다수.
  • 1993년
    노자의 도덕경을 생명사상의 관점에서 풀이한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다산글방)를 이현주 목사의 도움으로 펴냄. 9월에 병세가 악화되어 재입원. 11월 13일 민청학련 운동승계 사업회로부터 투옥인사들의 인권보호와 석방을 위해 애쓴 공로로 감사패를 받음. 평생의 동지였던 지학순 주교의 정신을 잇기 위해 <지학순 주교 기념사업회>의 결성을 병상에서 독려.
  • 1994년
    5월 22일 봉산동 자택에서 67세를 일기로 영면.
  • 1997년
    녹색평론사에서 장일순 선생님의 이야기를 모은 『나락 한알 속의 우주』를 펴냄
  • 1998년
    상지대학교 전시관에서 장일순 유작전이 열흘간 열림
  • 2001년
    7주기를 맞이하여 원주 시립박물관 주최 무위당 선생 기획전시회를 두 달 동안 열음.
  • 2004년
    10주기를 맞이하여 토지문화관과 원주가톨릭센터, 원주시립박물관 일원에서 추모행사가 열림. 최성현이 쓴 <좁쌀 한 알>이 도솔출판사에서, 최종덕이 편집한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가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됨.
  • 2007년
    9월 6일 무위당 선생의 사상적 유산인 원주밝음신협 건물 4층에 <무위당 기념관> 개관.